안녕하십니까,
얼마 전까지 대만(중화민국)에서 재외국민으로 살아가다가 이제 한국에 복귀하여 이번 대선에서는 내국인 투표를 하게 된 민주당원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재외국민들을 위한 공보물과 정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유일하게 민주당만이 재외국민 정책 약속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대선, 재외국민을 위한 이재명 후보의 정책 약속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야 재외국민의 어깨가 펴집니다!"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좋아야 사업도 잘되고 사회생활도 윤택해지기 때문입니다."
라고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외국에서 한국 여권을 가지고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다 보니,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 때 보다 더 제가 국적을 둔 국가와 저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더군요. 이재명 후보도 해외에서는 더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재외국민을 위한 정책약속집에 써 놓으셨더군요. 맞습니다.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곧 해외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재외국민의 삶에, 그리고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하나, 한국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가 세계의 뉴스가 되는 세상입니다.
대한민국의 상황, 대한민국에서 책임있는 사람들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가 제가 거주하는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현지에 보도될 때, 저를 보는 현지 동료들과 가족, 현지 뉴스의 눈빛과 논조가 달라짐을 저도 체감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제 옛날의 변방이 아니구나, 정말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쟁력 있는 강국이 되었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려워졌습니다. 강국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말 한 마디, 대한민국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계가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속에서 우리가 가지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은 곧 우리가 국제 사회에 느끼는 책임감에 비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 없이는 국제 사회를 주도할 수 없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는 나홀로 강국일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어제 이재명 후보가 대구 유세에서 언급한 중국과 대만, 즉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양안 관계에 대한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셰셰(감사합니다)" 그 자체가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라고 하셨죠? 중국에도 감사하고 대만에도 감사하면 된다는 그 말,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과 대만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이웃이고 핵심 무역 상대니까요. 다만 그 이후, "셰셰"에 이어지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중국과 대만이 둘이 싸우든지 말든지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이요.
이재명 후보님,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중국과 대만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우리와 불가분한 위치에 놓인, 한반도의, 대한민국의 이웃입니다. 만일 그곳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좋든 싫든 한반도에, 대한민국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패전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대만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화력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중공군의 포화를 피할 수 있었고, 태국의 환율 정책 변경이 한국의 IMF외환위기를 불러왔고, 대만 해운 회사의 사고가 한국의 물류 상황에도 영향을 주었고, 대만의 지진이 세계 첨단산업 공급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현재에도 다른 나라, 특히 이웃 나라의 상황과 무관하게 "우리만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재명 후보 발언의 도의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전문도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대립 심화는 우리나라에 위기이자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령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안의 대립이 우리와 무관하다니요? 한반도의 바로 옆 나라인 양안의 대립은 곧 한반도의 위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립 속에 미국과 일본이 얽혀있는 한, 더욱더 그렇습니다.
양안 문제는 그 어떤 나라도 이렇게 함부로, 가볍게 말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문제입니다.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서, 대통령으로서 이웃의 분쟁에 대해 "우리와 상관없다, 우리가 알바냐"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해당 분쟁과 대립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 동아시아 역내의 평화가 곧 한반도의 평화다"라고는 말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민감한 양안 관계, 국내 경제 및 남북관계 진전과 평화통일에 있어 한중관계의 중요성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중국이나 대만 그 어느 한 쪽 편을 확실하게 들 수 없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대만 해협의 평화를 지지한다, 동아시아 역내 지역의 평화가 대한민국의 평화다"라는, 지도자로서 상투적인 외교적 수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실제 재차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만에서 "남북한의 전쟁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며 뒷짐지는 미래를 감당할 수 있습니까?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은 또한 "주변국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국익중심 실용외교를 통해 한반도 및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구현과 함께 평화, 반테러, 비핵화, 기후 및 감염병 위기 등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글로벌 선도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나간다."고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선도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선도국가로서의 책임을 마땅히 질 수 있는, 지도자의 무게가 요구됩니다.
'무시하기'는 실용외교가 아닙니다. 실용외교는 줄타기이고, 국제 리스크 관리 능력이며, 다극화된 사회에서 현명하게 처사하는 것입니다. "둘이 싸우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말은 결국 그 말에 의해 상처받을 나라를 대한민국의 외교 상대로서 그냥 져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불필요한 리스크를 키우는, 현명하지 못한 외교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의적인 공감과 연민은 논외로 하고, 정치 및 외교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왜 한국인들의 신뢰와 지지를 잃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크라이나 정부의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무시와 무지 아니었습니까? 한일관계에서 우크라이나의 일방적인 일본에 대한 지지, 우크라이나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선전전 아니었습니까?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신뢰를 잃었고, 신뢰를 잃는 순간 실용외교는 고사하고 해당 외교 관계에 있는 국가의 국민적 지지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말 한 마디가 정말로 천냥 빚을 갚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번 "셰셰" 발언에 이어 어제 대구에서의 두 번째 "셰셰" 발언까지 쐐기를 박아버렸습니다. 대만 국민들은 이를 한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친중 발언으로 받아들이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셰셰" 그 말 자체가 친중 발언도 아니고, 후보의 말 전체를 오롯이 친중 발언이라고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대만에도 감사한다는 말이 있기에, 그걸 국내 언론이 친중 발언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언론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대만 국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음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한없이 가벼운 발언이었다는 것은 향후 외교 수장이 될 대통령 후보로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들이 싸우든지 말든지 우리와 상관 없다, 우리는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그 발언이 대한민국의 유력 대통령 후보의 모든 발언에 주목하는 국제사회에 경솔하고 책임감 없는 말로 받아들여질 것은 당연합니다.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 없이 국제사회로부터의 존중이라는 과실만 취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지난 "셰셰" 발언을 정면돌파하고 싶으셨으면 "중국에도 셰셰하고 대만에도 셰셰하면 된다" 이후에 오는 말이 "그 둘이 싸우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가 되면 안되었습니다. "중국에도 셰셰하고 대만에도 셰셰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중국과 대만 모두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고, 둘의 문제가 원만하게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동아시아 내의 평화가 곧 대한민국과 세계의 평화다"라고, 세계 10위권 강국의 대통령 후보 답게, 대통령 답게 말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대만, 즉 중화민국은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데에 많은 금전적 지원과 군사적 지원,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전문이 밝히고 있듯, 민주당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합니다. 상하이에서,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금전적으로 지원해준 것이 중화민국 정부, 즉 오늘날 대만 정부입니다. 광복군이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나라 잃은 한국인을 자국의 군대에 편입해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준 것 또한 중화민국군, 즉 오늘날 대만군입니다. 또한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도 대만이고, 한국과 대만은 상호 5~6위권의 높은 무역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만은 일본과 더불어 문화 한류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대만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약속한, 그리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경제강국, 문화강국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필요한 이웃입니다.
비록 복잡한 양안 관계와 남북관계 및 경제에서의 중국의 중요성으로 인해 양안관계와 대만에 대해 선제적으로,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건 대만 국민들과 세계 시민들도 이해할 것입니다. 다만 무시하지 않아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도리임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현재 이재명 후보가 강조하는 실용외교를 위해서입니다. 실용적으로, 대한민국의 안전과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보다 더 신중하게 양안 관계에 대하여 발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제와 같은 태도로 "우리와 그들이 뭔 상관이냐"는 발언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한 순간에 잃고 말 것입니다. 상투적이더라도, 양안 관계에 대해서는 "우리와 상관없다,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말이 아니라, 세계 속의 책임감 있는 대한민국, 이재명 후보가 이야기하는 '진짜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을 위해 "양 측이 평화로운 해결을 하셨으면 좋겠다. 동아시아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다" 정도의 실용적인, 책임감 있는, 무게 있는 발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대통령이 되시면 외교 정책, 특히 양안 관계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 앞으로는 세계 속의 재외국민들, 세계 속의 대한민국, 세계 속의 한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책임감 있는, 한국인의 어깨를 세계 속에서 펼칠 수 있는 그런 신중한 태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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